『일의 기쁨과 슬픔』 너무 일찍 읽어 버린 책 by 무민

저에게 가장 좋아하는 케이블 채널순위를 매기라고 한다면 아마 디스커버리 채널은 3위안에 들겁니다 
디스커버리는 대체로 좋아하는 프로그램과 (Myth Busters 라던지, How it's made 라던지...)
나오면 바로 채널 돌아가는 프로그램 (Deadliset catch 등등...)이 섞여있긴 하지만 말이죠

이 채널 프로그램 중에 How do they do it?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런던에 사시는 큰언니가 내일이 생일인 동생의 생일카드를 부쳤는데,
스코틀랜드 호수의 섬에 살고 있는 여동생에게 어떻게 생일날 아침에 카드가 도찰할 수 있을까?
라든지
멕시코 최대의 수력 발전소에서 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시설들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나
라거나
지금 제가 쓰고 있는 티타늄 안경테를 만든 티타늄은 어떻게 정련되어서 여기저기 쓰이는지
따위가 주 내용인 프로그램입니다
나레이션 하시는 미국(이겠죠?) 성우분의 유쾌한 목소리와 함께 이런 화면을 보고 있으면, 재미도 있지만
지금  이 세상이 정말 상상도 못하게 복잡한 분업화와
이를 수행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지탱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책 읽은 이야기는 하지 않고 주저리 주저리 TV 얘기나 하고 있었던 것은
책의 초반부가 꼭 이 프로그램을 보는 듯 했기 때문입니다
일터의 모습을 재조명하겠다는 생각을 드러내는 1장이나, 마트에 진열된 참치의 행로를 쫓는 2장이 특히 그랬습니다
읽으면서 '보통, 당신도 혹시 나처럼 그 프로그램을 좋아하나요?' 묻고 싶어졌습니다
'아직 보진 못했더라도, 보게 된다면 아마 맘에 들어할 거에요'라는 생각도 함께 말이죠

3장이 되면 비로소 보통의 글다운 모습이 드러납니다
비스킷 공장의 밖에서 보기엔 지루한, 어쩌면 일하는 자신들도 동감하지 못할 의미가 부여된 일을 살피면서
그 진부함에 절망을 느끼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놀라운 물질적 풍요에 다시 감탄하기도 하고,
직업상담이나 회계업무처럼 그야말로 현대의 산업사회가 그 정점에 도달했을 보여주는 일들에서
오히려 일에서 충족감을 얻고 만족할만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란 얼마나 힘든지 생각하기도 합니다
프랑스령 기아나의 로켓발사기지에서는 인류가 이루어낸 공학적 업적에 감탄하면서
거기에 있는 장엄함이 일상과 무관함에도 일상의 부조리함을 공학적 성취로 덮으려는 태도를 슬퍼하기도 합니다

대상이 되는 일에 대해 애정과 같은 것이 느껴지는 장은 그림 그리는 일과 송전공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자기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사소한 과정을 반복하는 화가의 이야기와
자신의 일과 자신의 삶의 관심과 의미를 일치시킨 송전기사를 따라가면서
 일에서 얻는 기쁨이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자신만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아직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일이란 것을 제대로 해 보지 않은 제가 읽기에는 너무 일렀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 후에 일이란 것이 어떤 것이라는 나름의 생각이 확실히 서면 다시 한 번 꺼내 읽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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