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속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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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계절학기-희랍로마신화중간고사제출문 하루의 끝

2. <일리아스>의 작가로 통하고 있는 호메로스는 희랍신화의 원형을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 헬레니즘과 로마 문명, 기독교의 중세문명, 더 나아가 근대와 현대의 서구문명을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A. Manguel이 호메로스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내용을 그 동안의 발표문과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장(Chapter)을 참조하여 호메로스가 어떻게 이해되고 평가될 수 있는지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다른 한편 여러분은 나름대로 호메로스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를 써보라. 특히 영웅들의 이야기를 신화 속에 담아내며 노래함으로써 그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통찰하고, 그 내용을 반영하라. 그리고 왜 호메로스가 서구문명사 속에서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고 있는지를 종교, 역사와 철학, 과학과 합리적 사유 등과 관련시켜 설명하라.


⇒ A. Manguel의 『Homer's the Iliad and the Odyssey』는 호메로스의 두 작품이 그 이후의 문화사에 끼친 다양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고대에는 호메로스의 실존여부에 대한 의심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다양한 전승들과 전기들, 서로 자신들의 고장이 호메로스의 고향이라고 주장하는 도시들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버린 한 이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그의 작품들은 한 지방에 국한된 것이 아닌 희랍 전체를 관통하고 있었고, 그가 그려내는 세계에서 영웅들은 비록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고 작품을 읽는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될 수 있었다. 플라톤이 자신의 『국가』에서 시가들의 해악을 거론하며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함을 주장했지만, 자신도 자주 호메로스를 인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호메로스가 가장 뛰어난 장인으로서 본받아야 할 뛰어난 시인이었다. 이후에도 호메로스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다른 시인들의 작품이나, 그의 작품에 대한 주석들이 지속적으로 쓰여졌고, 그의 작품에 대한 지식은 기본적인 소양으로 여겨졌다. 그가 시인의 모범으로 여겨지고, 그의 작품에 대해 아는 것이 교양인에게 요구되었다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 같다. 교양이라는 것이 어떤 집단 내에서 요구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이나, 그 집단의 내부가치에 부합하는 기준을 익히 체득하고 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호메로스의 작품들이 교양의 기본적인 척도가 되었다는 것은 당시의 희랍 사회를 관통하는 어떤 것을 그것들이 꿰뚫고 있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이후 희랍문화가 로마문화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호메로스는 베르길리우스라는 사도를 만남으로써 제국 전체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호메로스의 두 작품에 기반을 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는 그를 시성의 반열에 위치하게 했다. 물론 그의 작품 속에서 아이네아스는 호메로스의 여러 영웅들에 비해 뛰어난 덕목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면모를 지니는 아킬레우스나 오뒷세우스에 비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아이네아스로부터 시작해 아우구스투스에 이르는 로마의 건국을 다룬 『아이네이스』에 비해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하는 『일리아스』의 주제는 일견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전쟁 전체의 향방과 신들의 움직임을 결정짓는다. 이로써 『일리아스』는 단순한 영웅의 분노가 아니라 현실 뒤에 보이지 않는 인과의 움직임을 드러내는 작품이 되었다.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고 이내 국교화하게 되면서 호메로스의 작품들은 일종의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기독교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가?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그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들에게 진정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텍스트는 성서뿐이었고, 이교도의 신들-그것도 도덕적으로 전혀 모범이 될 수 없는-이 등장해 인간사에 개입하는 호메로스의 작품들은 마땅히 거부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당시 베르길리우스나 키케로 등을 알지 못하고 모범적인 라틴어를 익힌다는 것은 불가능하였고, 이러한 사정은 희랍어와 호메로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유대어가 아닌 최초의 다른 언어 성경이 희랍어 성경이고, 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초기 교회에서 이루어졌음을 생각해 볼 때, 또 그러한 작업은 양쪽 언어 모두에 능숙해야만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실제로 번역작업을 수행하던 기독교 지식인들에게 일종의 갈등과 대립이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후로 카톨릭 교회의 표준 성경이었던 Vulgate 성경의 라틴어 번역자인 St. Jerome 역시 이러한 대립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고대의 문학들에서 본래의 작자들이 깨닫지 못하고 무시한 것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밝혀낸다면, 이를 기독교 문화에 끌어들일 수 있다고 믿었다. 동시대의 St. Augustine 역시 자신이 교육받았던 희랍·로마 문학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로도 문학적 전범으로서의 호메로스·베르길리우스와 종교적 가치 간의 갈등은 쉽사리 봉합된 것 같지 않다. 제국의 정치적 분열은 이러한 고전들에 대한 태도 역시 분리되는 결과를 낳았는데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동로마제국에서 희랍어는 문학과 철학의 중심 언어였고, 교재에는 호메로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동로마에서 호메로스는 지속적으로 읽혀지고 새로운 창작의 원천이 되어 Epic Cycle과 Trojan genre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서로마에서는 고전 학문 전체가 이교도 신앙과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이에 대한 연구 역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트족과 반달족의 연이은 침략은 이탈리아반도를 황폐화시켰고, 공동체의 기억으로 전해오던 문학전통은 사라지게 되었다.

서유럽의 카톨릭 전통에서 사라진 희랍학문을 보존한 것은 이슬람의 학자들이었다. 일부 이슬람 학자들은 종교와 마찬가지로 철학 역시 진리를 얻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호메로스의 시 역시 진리를 담고 있기에 읽을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이슬람의 귀족사회는 희랍학문의 번역작업에 주요한 후원자들이었고 이러한 번역 중에는 호메로스의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호메로스의 이야기가 이슬람 문화에 끼친 영향은 『신밧드의 모험』에 나타나는 오뒷세우스의 모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세 말엽에 신학자들과 시인들은 고전 작품들과 성서간의 관계를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그들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대응시켜 해석하듯이, 호메로스의 작품들 역시 성서와 대응관계에 놓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전문학의 이교도 작가들은 예수에 대해 알지 못했을 뿐 성서의 관념들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고전작가들이 재조명되면서 호메로스는 최초이자 최고의 시인으로 여겨졌다. 비록 당시 라틴 고전에 보다 높은 위치가 부여 되었지만, 호메로스는 그러한 모든 문학의 근원이라고 생각되었다. 당시의 작가들에게 호메로스는 일종의 주춧돌과 같은 역할이었다. 직접 그의 희랍어 원본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시인들은 그에게 영향 받은 다른 작가들을 통해 호메로스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단테 역시 직접 호메로스를 접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모범으로 삼았던 베르길리우스를 통해 호메로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오뒷세우스의 저승여행은 아이네아스의 그것에도 영향을 주었고, 단테는 자신의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를 길잡이 삼아 그 장면을 되풀이한다. 호메로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미지들은 한 세대를 통해 그 다음 세대에 영향을 주면서 후대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호메로스의 작품들은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콘스탄티노플의 멸망으로 많은 희랍인들이 망명하면서 희랍학문은 번영하게 되었다. 하지만 종교개혁기를 거치면서 라틴어 성경을 제외한 히브리어나 희랍어 성경은 카톨릭 교회에서 지정된 학자 외에는 읽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이는 곧 희랍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졌다. 카톨릭 국가들에서 호메로스는 다른 라틴 문학들에 인용된 에피소드들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이에 반해 신교도 국가들에서는 호메로스가 지속적으로 연구되어 영국이나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는 꾸준히 읽혀졌다.

A. Manguel의 책에서는 호메로스가 어떻게 지속적인 생명력을 부여받아 한 세대의 작가들에서 그 다음 세대의 작가들에게 이어져 왔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글을 읽다 보면 정말로 서구 문명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호메로스로 귀결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단테와 같이, 후대에 그것을 직접 읽지 않았더라도 영향 받은 다른 작가들을 통해 끊임없이 새롭게 인용되고 변용되어 왔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어떻게 그와 같은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인가.

어째서 호메로스는 위대한 시인이자 그의 작품들은 역사의 시작점에 놓여 진 것으로 여겨졌을까? 그가 그려내는 작품 속에서 신들은 분명 불멸하는 인간 한계 너머의 존재이지만 동시에 변덕스럽고 잔혹하기도 한,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에 반해 그가 그려내는 영웅들은 비록 결점 있고 과오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전사로서의 명예와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성숙한 존재에 가까워보인다. 호메로스에서 불멸하는 신들과 필멸할 인간의 대조는 오히려 끝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삶을 살아야함을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영웅들은 ‘신과 같은’ 존재이지만 동시에 신처럼 영원히 살 수는 없다. 『일리아스』에서는 이와 같은 대비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영웅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필멸을 인식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명성을 전장에서 얻고자 한다. 명성은 그 자체로 탐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유한한 인간의 삶을 넘어 세대를 통해 기억되는 ‘불멸’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된다. 그러한 점에서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하고 있지만, 그 분노가 자신의 상처 입은 명예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억’을 통해 죽음을 넘어서려 했던 고대 희랍인들의 사상을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이라는 문제를 대입한다면 전장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 보이는 헥토르와 아이아스의 무구 교환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치열한 전장에서, 결국 어느 한 쪽의 패망으로 끝날 테지만, 그들은 자신과 호각으로 겨루었던 다른 영웅과 무구를 교환함으로써 상대에게 자신을 기억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전쟁에서 패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이름은 승자의 기록과 함께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기억됨’으로써 죽음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고대희랍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세를 상정하고 영혼의 구원을 전제로 하는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자신의 행위로 이름을 기록에 남길 이유가 없었다. 영혼의 불멸은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신에게서 얻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독교 중심의 중세 유럽에서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확실한 구원을 위해 자신이 죽은 뒤에 살아있는 가족들이 자신을 기억해주기를 원했다.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대체 그 기원이 확실히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연옥이라는 장소는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신화와 종교의 차원에서만 이런 경향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 ‘현대의 신화’라고 불리기도 하는 과학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과학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 최대의 성공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훌륭한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수단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에게 성공과 보상이란 자신의 과학적인 발견을 통해 동료 집단에게 자신의 이름을 뚜렷이 각인시키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충분히 인용될 수 있을 만큼 학문적 가치가 있는 논문을 남기는 것이다. 한마디로 과학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기억시키기 위해 온갖 실험도구들과 이론들을 무기 삼아 학술지라는 전장에서 싸우는 이 시대의 또 다른 영웅들인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30여년에 불과한 삶을 살았고 그의 제국은 불과 10년 만에 세워지고 분열되었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에 대해 기록을 남길 필경사를 대동했고, 지금 우리는 그를 위대한 정복자로 기억한다. 그는 영원히 살아있는 셈이다.

호메로스의 작품들은 분명 뛰어난 구조나 여러 생생한 비유들과 이후의 희랍신화를 형성하는 원천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희랍신화가 현대 서양 문명의 큰 축을 이룬다는 점에서 충분히 고전의 반열에 오를만한 작품들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이 갖는 생명력은 오히려 그 주제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보편적으로 궁금해 하고 두려워하고 극복하기를 원하는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에 대한 호메로스의 통찰력이 그의 작품들을 오늘날에도 꼭 읽어야할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죽음이 일개 인간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대상임을 깨닫고, 개개의 인간이 아닌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순환 속에서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찾은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신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상징이고, 획득할 수 없는 불멸을 손에 넣은 존재들이다. 그들의 강대함이 부각될수록 인간의 연약함이 부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는 것은 인간 자신일 뿐 신들도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제우스조차 자신의 아들인 사르페돈을 죽음의 운명에서 구해내지 못했다. 결국 스스로의 힘과 기지로 영웅들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영원성을 획득한다. 호메로스의 영웅들이 도덕적으로 본받을만한 존재들이 아님에도 매력적이고 멋진 것은 그러한 까닭이다. 그리고 호메로스는 그러한 영웅들을 노래함으로써 자신 역시 시가 속의 영웅들과 함께 불멸하는 존재가 되었다.



김태의 블로그 [기억] 호메로스가 전하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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